MKCollection 엠케이컬렉션 이만익미술연구소ㅋ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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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AN IK

 

이만익 李滿益 1938-2012

 

 

 

 

 

 

 

 

 

왼손잡이 화가를 그리워하며

000000000000000000000- 이만익李滿益화백

 

ㅅ00000000000000000000000시인 김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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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익 두친구(어린날의 추억)>

<Lee Man Ik Two Frinends 2005, Oil on Canvas, 53x46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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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0 0왼손잡이 서양화가 이만익의 화실은 신사동에 있다

낮에는 언덕 위로 눈부신 복사꽃이 피고

00000000밤에는 천도 복숭아가 그의 화폭 속에서 열린다.

 

000000000그가 절뚝이며 서성이는 화실 안은 언제나 환하다

화판마다 열리는 복숭아는0000000000000

설화 속의 아리따운 여인00000000000000

따뜻한 봄날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가족들이 지껄이는 음성이 두련두련 들린다.

 

왼손잡이 서양화가의 능숙한 붓은000000

설화 속에 있는 사람들의 체온,00000000

00000000숨소리가 담긴 고요마저 잡는다0000000000000000

0000그가 휘두르는 붓질의 굵고 단순한 선線안에

관음觀音도, 나그네 예수도 기웃거린다0

면도날로 잘 다듬은000000000000000000

검은 콧수염,000000000000000000000000

날렵한 왼손잡이 화실,000000000000000

소주 한잔 하자며 부르는 저녁나절0000

신사동의 언덕받이는00000000000000000

지금도 복사꽃잎 흩날리고 있을까00000

사람의 세월은 가뭇없이 사라져 가지만

이만익의 채색화는0000000000000000000

00이승에서 오히려 영롱하구나00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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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얼과 서양화가 이만익

 

 

 

< Lee Man Ik 이만익 먼 산 청운사 Lee Man Ik Cheongunsa Temple 220 ×120cm, Oil on Canvas, 2009 >

 

 

 

세상 일에는 무심한 듯 시공간이 정지된 청운사에서 봄의 정취를 유유자적 만끽하는 노루들..

시간은 흘러 어느새 2015년, 그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나서 세 번째 봄이 왔다.

 

 

"한민족의 얼과 자화상을 가장 한국적으로 그리는 현대 화가"로 불리우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속 한국의 얼과 한국적 정서의 아름다움을 사각의 캔버스 안에 승화시킨 대한민국 서양화단의 거장 이만익 ...

 

전 국민이 런던 올림픽에 빠져있던 지난 2012년 8월 9일 새벽 1시 57분

1988년 서울올림픽의 미술을 총지휘했던 화가 이만익 (1938~2012)은 조용히,

그러나 '이만익답게' 영면에 들었다. 향년 74세.

 

 

 

 

 

< 이만익 무릉 Lee Man Ik The Sailing Ship to Arcadia 600 ×160cm, Oil on Canvas, 1994 >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효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이고 일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그 이는 실로 수십년에 이르는 세월이며 철없던 어린날에 끄적거린 것이 어찌 그림이겠는가 웃을지 모르지만

철모르고 순진하게 바쳤던 지난날들의 시간들에 더없이 애정이 간다.

 

그래서 한걸음 멈추어 서서 지나온 나를 돌아보고 맞이할 시간을 다시 준비하기 위해

그가 겪은 '좌절감의 흔적'을 한자리에 모아 펼쳐보이기로 한 것이다."

 

(1996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40년 회고전' 부제 '말하는 그림. 소리 없는 시' 중에서)라고

<그림 40년을 여는 뜻>에서 그가 이렇게 소감을 밝힌지도 2015년 지금으로부터 어느덧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 이만익 오남매와 어머니 Lee Man Ik Mother and Five Siblings 100 ×100cm, Oil on Canvas, 2009 >

 

 

 

가족, 모자,강, 복숭아 나무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 설화 등 한국적인 소재를 특유의 화법으로 그려내는

가장 한국적인 현대화가로 평가받는 이만익 화가는 1938년, '산 좋고 물 좋은' 황해도 해주 상동에서 태어났다.

 

그가 즐겨 그리는 수양산 골짜기를 흐르는 광석천이나 모자상, 가족상과 탐스러운 복숭아 나무는

그가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작품의 면면에 관류하고 있다.

 

부친은 해방전 타계하고 1946년 어머니 이경숙 여사를 따라 6남매가 월남하였다.

8살에 서울 효제초등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미술반에서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부산 피난지에서 평생의 스승이 된 박상옥을 만난 것이 화업과 인연을 맺게 된 동가다.

 

 

 

 

 

 

 

 

중학교 때 국선 입선 . "출품자격 논란 일으켜....

00000000He was the first middle student to quali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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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학창시절의 모습 左왼쪽이 이화백>

 

 

 

 

 

 

경기중학교 3학년 때인 1953년 제 2회 국전에 <정동의 가을>과 (골목)을 출품해 입선했다.

중학생 신분으로 국전에 입선한 것이 크게 논란이 되자

이후 국전 출품 자격이 '대학 3년 이상' 조항을 추가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000000000000000000<이만익 하영, 국립현대미술관 소장>000000000000000000000000000<이만익 여념 Thinking at Leisure1967. oil on canvas 144 x 111cm>0000

.

 

 

 

 

이후 국전은 이만익의 독무대였다.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회화과대학 3학년이 된 후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국전에서 특선을 차지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1961년 졸업 뒤 1966년부터 <여념>, <하영>,<시장일우>등의 작품이 국전에서 3년 연속 특선을 휩쓸었다.

하지만 이후 4년간은 '맹랑한 낙선'의 고배를 거듭 마시고

1973년 9월 10년간의 미술교사직을 청산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左) 제1회 개인전 팜플렛 표지.000 (中) 자신의 첫 개인전 앞에서, ......".

(右)자신의 상상을 구체적으로 떠올린 모자도

<우연히도 이 작품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훗날 만난 이만익 화백의 부인의 모습과 너무도 비슷하다>

 

 

 

어렵고 힘들었던 20대는 가고 어느덧 35세가 되어 파리로 떠나면서 그는 한 수필에서

"나를 떠나 보내는 아내의 품에는 백일된 아들이 안겨 있었다."고 애조띤 과거를 되돌아 본다.

그는 10년간 몸담았던 교사직을 버리고 청소년 시절부터 꿈꿔왔던

그림만을 그릴 수 있는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좋은 그림은 개인의 소리가 아닌 사회의 소리여야 한다....

00000000000000000 000000000A good painting has to incoporate the feelings of the artist000 Lee Man Ik

0000000000000000000000000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담아서 보낼 수 있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다. 000이만익

 

 

 

'눈에 보이는 현실은 아름다은 것도 정돈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둡고 흐트러지고 비참한 것들이었다................

청계천 판자집과 서울 골목 골목이, 청량리역과 서울역 광장에 모인

삶에 지친 군중의 모습이 그러했다.

답십리 뚝길에는 밤바람 소리만 빈 들을 휘집고 다니고,

청계천 구정물이 죽음의 스틱스강 물빛처럼 검게 흐르고 있었다....

 

이만익 작가 회고글 중에서

 

 

 

 

 

 

 

< 이만익 청계천 Lee Man Ik Chaungge-chan, Seoul, 1964, Oil on Canvas, ,205x130cm >

 

 

 

 

 

 

 

<대학시절 작업에 몰두하던 모습>0000000000000000< 청계천의 옛모습>000000000000<작가와 청계천 작품에 얽힌 사연>

 

 

 

이만익 - 청계천 판자집들 -

[ 1964년도 작품인 <청계천>은 전후의 현실적 고뇌와 사회를 보는 작가의 예리한 사회의식이 농축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

 

 

이만익은 한국적 정서라는 커다란 과제 아래 인위와 조작이 없는 청정을 그린 한국적 서양화의 대가이다.

작가는 좋은 그림은 개인의 소리가 아닌 사회의 소리여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림은 인간의 보편적 감성에 교감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한민족의 한과 꿈을 화면에 담고자 했고, 또한 우리의 얼굴을 그리고자 노력해왔다.

가난의 고통이 느껴지는 청계천변의 판잣집들을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검은 하천과 비어 있는 어두운 판잣집은 사람들이 공존하기를 포기한 공간의 이미지를 풍기지만

당시의 우리의 감성과 얼굴을 잘 표현하고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는 주로 역대합실이나 아기를 등에 업은 노인,

생활에 지치고 고단한 청계천 일대의 풍경 등을 대상으로어둡고 탁한 색채로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 이만익 귀로 Lee Man Ik The Homeward Way 1961, Oil on Canvas, ,225 x140cm >

 

 

 

1964년 3월부터 한성 중,고등학교에서 시작해서

서울예술고등학교까지의 10년 남짓 한 시간을미술교사직으로 있으면서

이만익은 국전 3회 연속 특선을 했고 4회가 되었지만 추천작가가 되지 못했다.

 

관료적이고 폐쇄적인 국전의 아카데미즘이 팽배한 현실은

더 넓은 바깥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그의 예술적 욕망과 기대를 허망하게 만들어갔고,

결국 자기 자신과의 또 다른 처절한 싸움을 위해서

이만익은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 Then I started to appreciate that I was Krean and my paintings started to change."

" I understood about Korea i n Europe. And I Found out who I was "

 

 

 

 

파리 체류 2년여 동안 표현주의적 냄새를 풍겼던 작품 세계에 변화가 일어난다.

무거움과 어두움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같은 전환은 주제에 있어서 뿐만아니라 브러쉬 스트로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명암이 깃든 드로잉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고

대신 화면은 압도적으로 평면화되고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선의 기능을 되찾게 되었고 보다 단순한 색면의 대비로

색의 기능과 상징성도 얻게 되었다.

 

보이는 일을 화폭에 옮기는 일에서 보이지 않는 사념을 만들어내는

그림으로의 전환 계기를 터득하게 되었다.

 

 

 

 

 

 

프랑스 아카데미 괴쯔 (GOETZ)연수에 앞서 가진 1973년 제1회 개인전 겸 도불전 때만 해도 그의 작품은

사회에 대한 저항과 부조리, 절망과 불신, 현대인의 소외감 등으로 화면은 오뇌와 고뇌의 명안이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1975년 귀국전 겸 제 2회전에서 그림의 대상은 처용과 선화공주, 박타는 흥부일가로 바뀌었고

탈놀이와 농악, 민화 속의 호랑이를 등장시켜 우리의 끈끈한 정한과 해학, 익살과 풍자를 담아 사뭇 흥청거리는 감흥을 자아냈다.

 

 

 

 

 

 

 

< 이만익 몽마르뜨묘지 Lee Man Ik The Graveyard at Monmartre, 1974, Oil on Canvas, 56x46cm >

 

 

 

 

 

 

 

 

< 이만익 거리의 여인들 Lee Man Ik Women in Downtown, 1974, Oil on Canvas, ,61x50cm >

 

 

 

 

 

 

 

 

< 이만익 싸크레 꽈르성당 Lee Man Ik Sacre-coeur Basilica, 1978, Oil on Canvas, 52x45cm >

 

 

 

화가 이만익은 대담해지기 시작한다. 유학 기간 동안 그는 대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배우면서도

자기를 찾기 위해 그들을 열심히 지웠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지원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주제를 찾고자 했다. 한 개인의 자화상처럼 한민족, 한사회의 자화상을 찾고자 했다.

 

그의 주제는 우리들의 삶과 전설과 역사 등으로 한없이 확대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멀리서 자기와 우리의 역사를 찾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의 눈망울에 촉촉히 스며있는 내밀한 역사의 차원,

곧 화가로서 그는 통찰을 통해 고유한 감성의 전통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우리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전승된 감성을 형상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하여 쉽사리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작업이 요구되었다.

 

프랑스 유학이후 아류는 절대 안된다는 독자성에 눈을 뜬 화가 이만익은

"한국 정서의 표현은 서양인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며

한국적인 모티브인 어머니, 가족, 역사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그것을 자신의 화제로 삼고 작업을 진행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1978년 개인전에서 비로소 그만의 색깔을 갖춘 작품들을 내보일 수 있었다.

 

이처럼 빠르게 그림의 경향이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파리시절을 통해서

"만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그리는 그림" 속에 빠져있음을 깨닫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미술관에서 배우고

부수고 깨뜨리고 지우려는 인고의 과정을 통해서였다.

 

 

 

 

 

< 개인전에서 이만익 화백 모습 >

 

 

 

 

 

 

 

< 이만익 광대놀이 Lee Man Ik Clown's Play, 1975, Oil on Canvas, 52x45cm >

 

 

 

 

 

 

 

 

 

< 이만익 행려 Lee Man Ik Journey ( Night-cuckoo Singing , 1977, Oil on Canvas, 130 x 194 cm >

 

 

<행려>는 한국적 토착성을 추구하여 온 이만익 화백의 대표작

-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배꽃은 눈보다 희게 피어있는데

길가는 한 나그네가 한잔 술에 거나해져 잠들고 있는

이 모습은 어제를 살아갔고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살아갈 서민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는 것만 같다 -

 

 

 

 

 

 

 

 

< 이만익 도강 Lee Man Ik Crossing of the River, 1978, Oil on Canvas, 194 x130cm >

 

 

 

 

이만익의 그림은 우리역사의 삶에 깃들인 인물들으르 하나같이 관조하는 분위기다.

잔잔하게 미소띤 얼굴에는 기다림이나 그리움, 슬픔과기쁨이 엇살리고

기다림과 그리움의 연민 위에는 '충만한 침묵'이 초연히 머물고 있다.

 

그의 선은 굵고 힘찬 유기적인 곡선에다 색채는 원시적이면서도 미술적인 녹청 군청 산호색이 정제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선과 색은 표현적 차원이 아닌 상징적 의미이며

정교하게 계산된 필치와 '긍정적 시각'으로 선명한 회화효과를 추구해내고 있다.

 

삶을 찬미하는 마음에서 나온 장식성 또한 '정감의 세계를 논리적으로 정돈시킨 것'으로

이만익 화풍에서 중요한 예술적 특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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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익 호별상면 (수난) Lee Man Ik Tiger's Encounter with the Turtle, 1978, Oil on Canvas, 60x40cm >

< 이만익 쓸쓸한 바람 Lee Man Ik , 1978, Oil on Canvas, 80x80cm >

 

 

 

 

 

 

 

 

 

 

1988 서울 올림픽 미술 감독을 역임하며...

 

 

서울올림픽은 우리 사회와 문화계에 많은 유무형의 자산을 남겼고,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이 살아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자랑스럽게 고한 그 현장에 있었던

기억과 감격은 영원히 못잊을 것이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서울올림픽 미술감독 이만익-

 

 

 

 

000000000000전세계가 주목했던 영광스러운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과 폐막식 전광판을 수놓았0미술감독 이만익의 88올림픽 판화..

마스게임과 어우러진 그의 작품들은 독창적인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우리의 역사, 설화가 빚어낸 흥미로운 이야기,

전통과 현대를 자연스럽게 융화시키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지구촌 세계인에게 증명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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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삼국유사

 

 

한국적인 그 무엇을 찾던 이만익 화백에게 <삼국유사>는 거대한 고전으로 다가왔다...

 

문학에서 설화는 아득한 옛날부터 구전되어 온 이야기라는 특징을 가지는데

신화, 전설, 민담의 삼분법으로 한국 설화를 분류하고 있다.

이런 각각의 다양한 내용과 설화들을 현대 회화에서 소재로 등장시켰을때

단순히 한국적인 소재들을 화면에 보여주는 것보다는 우리 민족의 문화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는 삶의 가치관과 정서들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설화를 주로 소재로 잡고 있는 이만익의 회화는 민족적이며 가장 한국적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신화와 역사를 그린 화가 이만익

 

 

고대 신화와 설화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끌어들여 당대인들의 상상력에 의해 완성된 이야기다.

그러나 많은 동서양의 신화와 설화가 시공을 초월하여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

그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신화와 전설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심성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재창조되면서 현대에까지 계승되고 있어,

신화와 설화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혹은 민족심성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

신화학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유럽 중세의 화가들이 그리스와 로마신화의 등장인물이나 이야기를 화폭에 담으면서,

유럽인들의 근원과 보편적 심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시대부터 무덤 안에 봉황, 용, 주작 같은 신화에 나오는 동물을 그렸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사찰의 벽과 탱화에 많은 불교 설화와 민간 전승 설화를 그렸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단군 신화와 고구려 건국 신화 등은 황당한 옛날 이야기로 폄하되었고,

신화와 설화에 관심을 두는 화가는 없었다.

 

그런데 이만익 화백이 1980년부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멋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단군 신화의 웅녀, 고구려 신화의 주몽, 해모수, 유화를 비롯해 백제와 신라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우리 민족의 근원적 모습과 보편적 심성을 찾으려 한 것이다.

 

 

 

 

 

 

 

그림으로 만나는 <삼국유사>

 

 

 

그렇게 찾아 헤맸던 한국 문화의 원형을 서양화가 이만익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프로 다양한 그림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0 <삼국유사> 속 다양한 이야기는 이만익 화백이 가장 즐겨 그린 소재이자 주제였다.

 

 

 

 

o o설화적 상상력으로 탄생한 "주몽의 불같은 열정, 화폭에 타오르다

 

0000< 이만익 해돋는 나라로(주몽탈출도) Lee Man Ik Toward the Glory Land, 1993, Oil on Canvas, 300 x160cm >

 

 

'주몽' 설화는 고구려 건국신화이다. 건국신화는 민족의 범위 내에서 전승됨으로

그것을 향유하는 집단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부여하는 기능을 갖는다는 특징과 역할이 있다.

 

그런데 많은 건국신화 중에서도 화가 이만익은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가장 넓은 토지와 힘이 강성했던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을 주인공으로 꾸준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나라를 세운 후의 주몽이 아니고

이제 막 부모의 곁을 떠나 자신 앞에 놓인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주몽을 선택한다.

 

화가 이만익은 주몽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한 당시 1970~80년 혼란했던 시대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0년 초반까지의 어지러운 시대상과 민중이 지니고 있었던

어떤 무력감을 뛰어 넘어서길 바라며 우리 민족이 지닌 위대함을 표현해낸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주몽 신화의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어디까지나 인간을 중심으로 엮어져 있는 인간중심의 이야기를 자신의 화폭속으로 펼쳐내는

화가 이만익의 주몽시리즈는 민족적이며 인본중심주의의 기틀이 된 작업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 이만익 유화취적도 Lee Man Ik Princess Youh-hwa and Her Sisters, 2003, Oil on Canvas, 162 x112cm >

 

<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이만익 유화취적도 >

 

2005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포스터로 선정된 이 작품은 유화 자매 세 사람의 꿈많던


처녀시절로서 자연과 어우러져 사랑과 기상을 표현하고 있다.

자유롭고 강건한 기상의 세 자매의 모습이 주몽의 야심찬 기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화자매도>는 주몽 설화에 나오는 하백의 세 딸 유화, 훤화, 위화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
세 자매는 강물의 신의 딸답게,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이는 압록강에서 유유히 악기를 불며 놀이를 즐긴다.

이를 본 해모수가 자식을 볼 생각으로 도술로써 궁궐을 만들고 세 자매를 초대하여 연회를 열었고,

세 자매가 술에 취하자 유화와 정을 통한다

.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만익 화백은 유화의 허벅지를 살짝 드러내 보였다.

.
하늘의 신의 아들인 해모수가 왜 그런 도술을 펼치고 유화와 정을 통했는지에 대한 화가의 해석을 보여주는 표현으로,

주몽 설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없으 그려낼 수 없는 모습이다.

 

.
우리나라 화가 중에서 우리나라 신화와 설화의 세계를 화폭에 담은 화가는 이만익 화백이 거의 유일하고,

그는 우리나라 현대미술에서 소재의 폭을 넓혔을 뿐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창조하는 데 성공하였다

 

 

 

 

 

 

 

0000< 이만익 선화공주 Lee Man Ik Princess Seuhnhwa, 1984, Oil on Canvas, 97x97cm >

 

 

 

작가의 말

 


진평왕때 선화공주는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한다.

그러나 괘심하게도 경주 장안에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퍼져 나갔으니

‘선화공주님은 살그머니 정을 통하여, 서동이란 사내를 밤마다 몰래 안고 다닌다누....’

사실이야 어떠했던 공주가 남몰래 사랑을 즐긴다는 이 서동요는 참 그럴 듯하다.

 


한 천 년 거슬러간 이야긴데도 서동이란 사내에게 질투를 느낄 만하다.

마를 캐던 산골 청년이 나중에 무왕인지, 무령왕인지가 되어서라기보다.

저 그윽한 선화공주님을 이끌어낸 그 놀라운 사랑의 솜씨에 대해서이다.

 

 

 

 

 

 


0< 이만익 치술령 신모도 Lee Man Ik Godness on the Chisoullyaung Pass, 1984, Oil on Canvas, 91x73cm >

 

 

 

작가의 말

 

눌지왕 때 신라는 국력이 약해 왕제 미해를 일본에 볼모로 보낸 지 30년이 되었었다.

양산 태수 김 제상은 왕을 위해 고구려에 있던 보해를 멀리 구해오고,

미해를 구하기 위해 율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미해를 탈출시키고 왜왕에게 잡힌 바 된 제상은 ‘왜국의 신하사 되느니 계림의 개,

돼지가 되겠다.’하고, 오형을 달게 받고 순절하고 말았다.

 

남편이 살아오기를 기다리던 제상의 처는 바다가 보이는 치술령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다 죽으니 그 원혼이 치술령신모가 되었다.

 

사당이 있다 하나, 신모는 이런 모습으로 밤마다 치술령 깊은 곳을 헤맬 것 같다.

치술령의 신모(神母)가 된 신라 눌지왕의 충신 박제상의 처.

눌지왕의 신하인 제상이 눌지왕의 아우인 미해를 구출하고 왜국에서 죽고 난 후,


제상에 대한 그리움을 이겨내지 못하여 바다가 바라보이는 치술령(?述嶺)이라는 고개에 올라가

왜국쪽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죽어 치술신모(?述神母)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것으로서, 그의 부인이 고개에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설화가 민간에 전하기도 한다.

 

 

 

 

 

 

 

< 이만익 정읍사 Lee Man Ik Jeuhng-ub-sa (Prayer for Lover’s Safety, 1982, Oil on Canvas, 100x80cm >

 

정읍사(井邑詞)는 지금까지 남아 전하는 유일한 백제의 노래이다.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노래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신라 경덕왕(景德王) 이후 구백제(舊百濟)에 유행하던 민간노래인 듯하며,

고려·조선 때 궁중음악으로 쓰였다.


이 노래는 남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음에도 이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몸이나 편안히 다니시라고


달에게 축원하는 아름다운 여심의 간절한 표현이다. 이 노래에서 달은 곧 천지신명(天地神明)을 뜻하며

이를 향해 여인이 축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읍사>가 음악으로 이렇게 작곡된 것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일 것이다.

 

 

 

 

 

 

 

 

< 이만익 헌화가, Lee Man Ik The Song of the Flower Offering, 1999 , Oil on Canvas, 91x73cm >

 

 

신라 향가의 하나. 제 33대 성덕왕때 한 노옹에 의하여 불린 4구체의 향가이다.

성덕왕대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로 부임해가다가 해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곁에는 높이 천길이나 되는 돌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바다에 닿아 있는데,
그 위에는 철쭉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그 꽃을 보고 좌우의 종자들에게 그 꽃을 꺾어 바칠 자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으므로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였다.


마침 그 곁으로 암소를 끌고 가던 노옹이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고 또 가사(歌詞)를 지어 바쳤는데,

그 노옹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말하는 그림 소리없는 시

 

 

Paintings That Speak, Poem with No Sound

< 조지훈의 시 '를 특유의 한국적 서양화풍으로 형상화시킨 이만익 화백의 작품 '승무 ' 앞에서>

 

 

“ 나는 문학은 보이지 않지만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그림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소리없는 시라고 생각을 한다고."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인터뷰:이만익, 작가]

 

 

이만익은 그림은 물론 시를 사랑하고 글을 잘 쓰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좋아하는 시를 읊조리곤 했다.

그의 그림에 시를 소재로 한 것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는 키오스의 시인 시모니데스(Simonides)의

‘회화는 말 없는 시요, 시는 말하는 회화’라는 싯귀에 동의하여

자신의 그림을 ‘말하는 그림, 소리 없는 시’로 천명하고

‘그림은 시이고 시는 그림’이라는 소신으로 그가 하고 싶은 말과 생각,

그리움, 열망을 열정적으로 화폭에 써나갔다.

 

그는 “좋은 그림은 개인이 아닌 사회와 인간의 소리여야 하고, 이는 인간의 보편적 감성과 교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적 정서만이 보는 이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 이만익 승무 Lee Man Ik A Dance in Buddhist Attire, 1996, Oil on Canvas, 194x130cm >

조지훈이 지은 시. 승무를 추고 있는 여승을 소재로 하여 삶의 번뇌를 극복하고자 하는 염원을 회화적으로 형상화한 작품

 

 

 

이만익 작作 승무는 오동잎이 떨어져 내리는 밤, 달빛을 받으며 홀로 승무도를 추는 여승의 춤이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번뇌를 이겨내고자 하는 몸동작이며,

단순히 젊은 여승의 춤을 노래하기보다는 춤으로 나타나는 마음 속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고 있었던


시인 조지훈의 작가적 관점을 섬세하게 구체적인 형상으로 캔버스 속에 승화시키고 있다.

 

달빛에 부서져 떨어져 내리는 듯한 오동잎을 배경으로 하늘 위로 펄럭거리며 휘어져

올라가 세속의 번뇌를 떨쳐버리고자 몸부림치는 젊은 비구니의 고뇌가 절제된 화면 속에서


감동의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시인 조지훈의 시에서는 승무를 출때 펄럭이는


비구니 머리에 씌어진 고깔이 움직임이 나비와 같다고 이와 같이 표현하였다.

 

‘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이만익 화폭 속에서는 승무를 추며 펄럭이는 한 여승의 자태가 나비 한마리가 되어 펄럭이는 듯하다
.

 

 

 

 

승무 僧舞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조지훈

 

 


-조지훈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화가 이만익의 ‘승무 (1996년작) ’는 ‘승무’라는 불교적 춤을 소재로 하여


삶의 번뇌를 이겨내려는 여승의 모습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깊은 영감을 받고


시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시상을 통해 피어오르는 시각적 상상을

이만익 특유의 한국적 화풍으로 재해석하여 한폭의 정지된 화면으로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다.


이와 같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적인 시와 그림의 절묘한 조화는 우리 민족의 설화 역사 뿐만


아니라 문학, 종교, 철학까지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있는 요소는 모두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가까이 있어도 무심코 지나쳐 버리릴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한국적 미감의 서양화를 통해 예술로 소통하고 그 가치를 상기시켜준다.

이만익 화백의 단순화 시키고 절제된 구상화의 화면 속에는 겉보기와는 달리

많은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한폭의 그림의 완성이 단순히 작가 특유의 개성으로 외형적이고 형식적으로 멋들어지게

완성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 즉 작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고


무엇을 의미있게 전달하고 표현하고 싶었는지. 그림의 내용에 대한 중요성도 이만익 화백의 작품

‘승무’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 역사, 설화, 문화, 종교 ,예술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고,

우리 민족의 얼과 유구한 인고의 시간을 통해 찬란하게 꽃을 피운 우리의 역사와 이이기를 가장 한국적이고

현대적 서양화를 통해 서양화가 이만익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 이만익 님은 갔습니다 Lee Man Ik He’s gone 1984, Oil on Canvas, 97x97cm >

 

 

불교의 승려이며 기미독립운동을 일으킨 애국지사의 한 사람인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의 <님의 침묵>은

님이 침묵하는 시대'의 '님'을 잃은 슬픔과 새로운 신념을 노래한 서정시이다.

뛰어난 서정성과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으며


「님의 침묵」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한국 문학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해의 시는 한국 시문학의 고전으로 꼽힐 만큼 한국시 최고의 정신성으로 표상된다


「님」이라는 한국말의 원형적 의미와 화가 이만익의 한국적인 정감이 뭍어나는 회화와의 결합은


‘말하는 그림, 소리없는 시’라는 말이 떠오르 듯

화폭 속에 절제되고 함축적으로 생생하게 담겨진 시처럼

말하는 그림이 되어 버렸다.


님을 잃은 슬픔을 승화시키고 침묵하면서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과 비상하는 학의 모습을 통하여


이별의 슬픔에 절망하지 않고 그것을 새로운 만남의 희망으로 초월하는 메세지는 화가 이만익의


한국적 정한이 담긴 화폭 속에서 메아리의 되어 담겨져서 한국적 정서의 보편적 공감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슬픔을 희망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위대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삶에 있어서의 만남과 헤어짐의 실상(實相)을 깊이 있게 깨닫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구절에 나타나 있듯이,

만남은 곧 헤어짐이요, 헤어짐은 곧 만남이라는 것,

다시 말해 헤어짐은 새로운 만남의 전제 조건이라는 역설적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떠나갔다고 생각하던 '님'은 사실은 떠나간 것이 아니라


다만 '침묵'하고 있을 뿐임을 알게 되고,


그 침묵하고 있는 님을 위해 '스스로도 주체할 길 없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 시는 상상력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님'이 누구이냐에 따라 시의 내용과 주제가 달라질 수 있다.

'님'을 '조국', '불타(佛陀)', 또는 '조국과 불타가 일체가 된 존재'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은 '님'이 지니는 전체 의미를 드러내지 못하고 일부로써 한정시켜 버릴 우려가 있다.

 

시집 <님의 침묵>의 서문『군말』에서 시인은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말대로 '님'은 위의 해석들을 포괄하는 '그리워하는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님」이라는 한국말의 원형적 의미와 화가 이만익의 한국적인 정감이 뭍어나는 회화와의 결합은

말하는 그림, 소리없는 시’라는 말이 떠오르 듯 화폭 속에 절제되고 함축적으로


생생하게 담겨진 시처럼 말하는 그림이 되어 버렸다

 

 

 

 

님의 침묵 000한용운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이만익 진달래사연 Lee Man Ik Azalea Flower Story 1982, Oil on Canvas, 80x60cm >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은 떠나는 님에 대한 열렬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떠나는 님에 대한 영원한 사랑과 축복의 표현으로

이별의 정한을 숭고한 희생적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떠나는 님을 결코 보내고 싶지 않다는 강한 만류가 숨겨져 있다.

 

이만익 화백의 진달래 사연은 한국적인 토속적이고 봄내음이 물씬 풍기는 질감과


향토성 짙은 배경과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별의 정한을 절제하고 더 나아가서 그 아픔을 초월하여

진달래 꽃을 어루만지고 있는 인물의 표현이 한국적 이별의 정서를 화폭에서 꽃피우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정서를 대표하는 시와 가장 한국적인 구상화의 성공적인 만남은

내용과 형식에서 한층 더 격조 높은 한국적 아름다움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진달래꽃

 

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우리다.



 

진달래꽃은 떠나는 임에 대한 시적 화자의 열렬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대상입니다.


또한 표면적으로는 떠나는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과 축복의 표현으로,


이별의 한을 숭고한 희생적 사랑으로 끌어올린 표현입니다.

 

 

 

 

 

 

 

< 이만익 시인 윤동주 예찬 Lee Man Ik Hommage to Poet Youn Dong-Jou 1991, Oil on Canvas, 162x112cm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시인 윤동주의 「서시(序詩)」는 우리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 중의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를 어렵지 않게 암송할 수 있을 것이고, 시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구절이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아마도 시인 윤동주의 「서시(序詩)」는 이만익 화백이 가장 애착을 느꼈을 시였을 것이다.

 


그의 생전 마지막 전시회가 된 2011년‘석양의 노래’에서 만익 화백은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 중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오늘밤도 별빛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슬픈 노래를 듣고, 나를 되새기는 마음으로 그림세계에 매달려 힘찬 석양의 노래를 부르며 작업을 했다고 전했다.

 


이만익 화백이 2009년‘휴머니즘 예찬’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면서


갈수록 삭막해져가는 세상에서 현대 미술에서 조차도 인간을 위하지 않고 인간이 조롱과 비하의 대상이 되면서


그림에는 휴머니즘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휴머니즘’이 강조된 작품들을 선보였다.

 


우리의 모습을 과거와 현재에서 가져와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려온 화가 이만익도

이전보다 너무 냉혹하게 변해가는 세상이 낯설고 평생 한길을 묵묵히 걸어온 예술가로서 느꼈던


삶의 회한, 번민과 갈등이 작품 속으로 녹아들게 된다.

 

가혹한 시대에 순결한 영혼과 영롱하고 투명한 언어를 무기로 시대의 어둠을 함께하며


마침내 그 길고 외로운 터널을 지나서 이제는 가장 어두운 밤 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영롱한 별이 된 시인 윤동주의 예술적 영혼과 시는


화가 이만익에게 많은 공감과 영감을 주었고 주저없이 화폭에 옮겨져 고뇌하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모습으로 우리들 눈앞에 펼쳐 진다.

 


무엇보다도 시인 윤동주의 모습이 가족도에 많이 등장하는 둥글고 선한 인물들의 형상과는

또 다른 이만익 스타일로 재해석되어 탄생한 현대적인 인물로 나타나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아름답지만 슬픔이 서려있는 푸른 밤을 배경으로 하늘에 떠 있던 별들도


스쳐가는 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가 있는 지상으로 떨어져 내린다.

 


고뇌하는 시인 앞에 놓여진 죽음을 맞이한 새와 뒤에서 날아가는 새의 강한 대비를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젊은 시인의 고뇌가 이미 초월적 경지에 이르러 있으며 글씨가 적혀 있지 않은 시집과

그 밤의 적막을 뚫고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철교 위의 기차의 공감각적 대비는 이만익의 회화적 상상력과

시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예술적 표현력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화가 본인이 그림 속의 젊은 시인이 되어 서시를 읊고

험난하고 때로는 절망스러웠던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고

운명과 맞서서 자신의 길을 끝까지 따라갔던

시인 윤동주의 운명애의 결의와 화업 50여 년을 통하여

한결같이 어려움과 극복의 세월을 통해 이루어진

 


우리 민족의 용기와 삶의 풍퓨, 자연과 사랑을 표현하고

민족의 노래를 화폭 속에서 담아온 예술가적 정신은 일맥상통하고 있다.

 

 

“...자기 고집으로 한 가지 일념을 가지고 몇십년을 일한다는 것은

지극히 미련하고 바보스러운 짓인 것처럼 보인다.


화업 50년은 한 사람에게 너무 고독하고 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해서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있는 인생이 어찌 즐겁게 흥얼거릴 가벼운 노래만 있겠는가

.
사람이 나누는 정에도 기쁜 정, 슬픈 정, 만나는 기쁨, 헤어지는 아픔이 있는 것인데..

 


지난 세월 나는 너무 오랫동안 다뜻하고 정겨운 정감만을 표현하려했던 것 같다.

내 속에 있는 슬픔과 분노의 감정은 자제해왔다.

 

이제 나는 석양이 아름답고 뉘엿뉘엿 황혼에 가까워지는 길목에 서서

나의 서투르고 덜 익은 세계관,종교관, 인생의 추억, 희망을 되새기며


나의 마지막 노래가 될지도 모르는‘석양의 노래’를 홀로 읊으려 한다.

 

성실히 일하는 인생이었다면

자신이 만나고 자기가 산 세상을 원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오늘밤도 별빛이 바람에 스치운다.’ 라고 읊은 윤동주 시인의 젊고 슬픈 노래를 지금 와 되새기게 된다.

어찌되었건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은 아름답고, 정겹고,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자유로운 마음으로 내 그림의 세계에 매어달려 힘찬 석양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다시 내 그림에 대하여 ‘석양 (石陽)의 노래’ 2011년 중에서 이만익---------

 

 

 

 

 

서시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윤동주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국 정서의 원류를 찾아서

 

 

 

우리 미술의 전통은 무엇이고,어떻게 현대적 계승이 가능할까?

또 한국적인 화풍과 그 시대정신의 실체는?

 

 

이만익 화백의 작품은 이같은 질문에 하나의 답안을 제시한다.

그의 그림에는 찬란한 원색이 춤춘다.

 

단순하고 절제된 도상은 강렬한 느낌을 던진다.

우리 겨레의 이야기를 담다보니 선사시대의 신화에서 심청전같은 판소리,탈춤까지 나와 흥을 돋운다.

현대적 감각도 가미해 뮤지컬 ‘명성황후’의 포스터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같은 이만익은 특유의 한국적 미감으로 민족혼 서린 한민족의 한과 꿈을 화면에 담는 동시에


전통 채색화의 현대적 계승작업이 이루어져서 “가장 한국적인 현대화가”라고 불리워지게 된다.

 

지난 1995년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화업 40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을 개최한 이후에


2000년‘한국 정서의 원류를 찾아서’란 타이틀로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이만익 화백은 우리 미술의 전통과 창조적 계승이란 물음에 대하여 과감하게 또 한번 자신의 틀을 깨고


형식미보다는 주제의식에 의한 새로운 단계의 진지한 작업을 선보인다.

 

 

 

 

 

< 이만익 청산별곡 靑山別曲 Lee Man Ik Cheong-San-Byeol-Gok 2005, Oil on Canvas, 388x113cm >

 

 

“거기에는 찬란한 원색이 춤을 추고 있다. 단순하고도 절제된 선에 의해 이루어진 도상은

강렬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것은 정다운 이야기다. 우리 겨레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건국 신화에서부터 심청전과 춘향전 같은 판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탈춤까지 나와 흥을 돋군다.

한마디로 과거의 설화에서부터 오늘날의 정겨운 풍경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편안하게 펼쳐져 있다.


원색과 설화의 향연, 미술계에서도 흔하지 않은 한국적 미감에 의한 독자성의 그림세계이다.”


< 이만익 - 원색에 담겨진 겨례의 소리 중에서 ... 미술평론가 윤범모 >

 

지난 1995년에 열린 이만익 화업 40년 회고전을 통해서

초기의 사실적이고도 아카데믹한 화풍에서부터 이만익 원색의

독자적 화풍을 수립하기까지 오랜 세월의 방황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그는 초기의 걸작 <청계천> (1964)에서 오늘날의 원색에 의한 설화 연작이 체계화되기 시작하는

197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견고한 조형실험을 보여 주었다. 그러니까 그는 현재의 화풍에

몰두한 20여 년이라는 연찬의 세월을 다양한 작품으로 각인시켜 주고 있다.


한 두 가지의 전형적 도상은 곧잘 형식미에 빠져 활달한 창의성을 삭제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림의 형식미보다는 주제의식 많은 비중을 두고 ‘ 한국 정서의 원류 ’라는 이전보다

훨씬 심오하고 어느 작가도 이토록 관심있고 치열하게 다루지 않았던 결코 쉽지 않은 주제를


자신의 틀을 다시 한번 깨고 내용뿐만 아니라 회화적 형식의 개성까지도 끌어올리며

이만익식 한국적 서양화풍의 성공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대한민국 화단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지닌 가장 현대적이고 한국적인 화가로

대중들과 화단에 재각인되며 기존의 작가적 명성에 화려한 날개를 달게 된다.

 

 

‘한국 정서의 원류를 찾아서’는 이만익 화백이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서 고귀하게 얻었던

평생 화업의 주제인 ‘우리 고유의 정체성이 한국적 정서’를 심화시켜서 우리 미술의 전통을

가장 현대적이고 한국적인 화풍의 서양화로 성공적으로 계승하고 주제의 다양성과 형식에 있어서도

탁월한 예술적 표현력으로 절정에 이른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가족도

가ㅈ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 0 0 0 0이만익 한국 정서의 원류를 찾아서 ..

 

 

 

 

한국적 명화의 탄생 - 이만익 가족도 家族圖

< 이만익 가족도 고향집 家族圖 Lee Man Ik Family, 2009 Oil on Canvas, 162x112cm >

 

 

그가 추구하는 휴머니즘의 원천엔 가족이 있다.

지붕 위엔 열심히 익어가는 박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넉넉한 시골집 마당에 아버지와 어머니, 아이들이

덤덤한 표정으로 팔짱을끼고 턱을 괴고 나란히 앉아 있다.


외양간의 송아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 이들은 지금 그리운 누군가를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만익은 현재 우리 민족의 화두로 등장되고 있는 역사관과 가족관이라는 주제를

오래전부터 깊이 있게 통찰하면서도 대중적으로 쉽게 표현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다

 

 

이만익의 가족도는 화가 이만익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눈에 익숙할 정도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알려진 작품이고

초중고 교과서는 물론 유치원 미술 시간에서도 아이들이 따라 그려 보게 된는 한국적 명화가 되었다.

어느 민족보다도 가족애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따스한 정감이 넘치는 가족도는 보는 이들에게

그림 속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우리 가족의 모습이 투영된 ‘자화상’이 된다.

 

 

이만익의 가족도는 우리민족의 감수성으로 민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하면서 소박하고 향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이것은 1922년 1월호에 이광수가 <개벽>에 개제한 「예술과 인생」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이

우리 민중의 특색을 파악하고 그에 걸 맞는 예술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견을 실현시킨 작품이다.

 

 

 

 

 

 

고행苦行에서 피어난 정 情 - 이만익 가족도

 

< 이만익 가족도 동산에 달오르니 Lee Man Ik Family, 2006 Oil on Canvas, 53x46cm >

 

 

"처절한 외로움에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런 마음을 작품에 옮깁니다."

 

우리 민족의 심성과 사랑을 따뜻한 가족애로 표현하는 이만익 화백.

그림속에서 묻어나는 따스함과 달리 처절한 '고행'을 통해 작품 세계가 열림을 말한다.

 

그가 즐겨 그리는 것은 가족도. 달빛 아래 핀 벚꽃 속의 일가족.

동글동글한 정겨운 얼굴. 자연의 서정성 짙은 풍경을 상징적인 배경삼아

단란하고 정겨운 가족이 뭉게 뭉게 피어난다.

 

그의 작품은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아이를 사랑스럽게 무릎에 안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대중에게 민족정신을 알기 쉽게 전달한다.

단순하고 명료한 선, 형태, 색채들을 통해서다.

 

 

 

 

 

 

 

< 이만익 가족도 家族圖00Lee Man Ik Family, Oil on Canvas, 91x73cm >

 

 

만익 화백은 우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사계절의 순환계처럼 도입하고

우리의 희로애락을 전설과 설화와 신화의 그릇에 담아 풍성하게 표출시키면서

우리의 태곳적 꿈과 이상과 심성을 복원시키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우리 시대이 드문 광대요, 진정한 해몽가요 예술가다..

민중적이고 리얼리즘적 감수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을 속으로 침잔시켜 보다 큰 포용으로


우리 문화의 원류를 더 넓고 깊게 파혜쳤다.

 


그는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도 자랑할 수 있는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고

국 문화의 원류를 세계화 시킨 큰 작가임에 틀림 없다.

 

 

 

 

 

 

< 이만익 가족도 봄밤 , Lee Man Ik Family, 2004 Oil on Canvas, 53x46cm >

 

 

 

이만익 화백은 절제된 색채와 구도로 한민족의 따뜻한 심성과 가족애를 일관되게 표현해 오고 있다.


전설이나 설화,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근하게 풀어낸 작품들은

소박하고 향토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이만익 화백이 그려낸 인물들은 어른이나 어린아이, 남녀 구분 없이 대부분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다.

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표정을 담아내기 위해 이런 모습을 그린다고 말했다

.
“화가가 제일 그리기 어려운 것이 보고 싶거나 그리워하는 감정입니다.” (이만익 인터뷰 중)


붓을 안 들었으면 시를 썼을 것이라는 그의 그림이 문학적인 이유다

 

 

 

 

 

 

< 이만익 가족도 아리랑 아라리오 , Lee Man Ik Family, 1994 Oil on Canvas, 91x73cm >

 

 

이만익 화백의 가족도는 서정적인 자연 풍경 위로 단란한 가족을 또렷하고 단순한 선으로 형상화했다.

새순 올라오고 꽃 활짝 피는 봄날, 소풍 나온 식구들의 모습도 정겹다.

 

 

한국적 정서의 원류가 되는 ‘가족’을 소재로 화가 이만익은 그토록 험난하고

어려운 시대를 경험하면서 자신을 굳건하게 지탱해주었던 것이 바로 ‘가족’이고

가족도를 통해서 한민족의 자화상과 우리의 얼굴을 형상화하여 보는 이들에게

보편적 공감과 사랑,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이만익은 한결같이 그려온 가족도를 통해서 가족애와 그리움의 정서를 전파하며

한국 정서의 근원이 가족’에 있고, ‘가족’‘모자 (母子)’라는 ‘일상성’에서

그 소중함과 중요함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현실적이고 가족이아 모정 같은 의미가 약해지지만

우리가 꼭 살리고 옹호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깊은 마음과 정겨운 이야기가 담기 그림이 좋잖아요.”

그림 속에 담겨 있는마음의 정겨움과 따뜻함..

우리만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되요.

우리만의 각별한 심성과 원류를 잘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문화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으니까요 .”

 

 


 

 

 

< 이만익 도원가족도 Lee Man Ik Family, 2009 Oil on Canvas, 162x112cm >

 

"갈수록 삭막해져가고 변해가는 인명경시 물질주의를 겪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만익의 가족도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보는 이로 하여금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 받을 수 있게 하고

치유의 길로까지 인도 하는 한국적 휴머니즘의 압축되어 있다."

 

 

영원한 한국적 정서의 원류가 되는 ‘가족’을 소재로 화가 이만익은 그토록 험난하고

어려운 시대를 경험하면서 자신을 굳건하게 지탱해주었던 것이 바로 ‘가족’이고


가족도를 통해서 한민족의 자화상과 우리의 얼굴을 형상화하여

보는 이들에게 보편적 공감과 사랑,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소박하지만 정감 넘치는 이만익의 ‘가족도’

단순화 시킨 인물과 함께 강한 원색과 안정감 있는 구성

계절의 변화 및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과 토속적 정취가 어우러져

한국적 정감이 물씬 풍기는 ‘이만익의 가족도’로 탄생된다.

 

그의 그림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이만익만의 화풍이며


'한국적 정서'라는 커다란 과제 아래

인위와 조작이 없는 청정을 그린

한국적 그림으로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을 적셔줄 것이다

 

 

 

 

 

 

 

 

어머니

 

 

 

이만익 한국 정서의 원류를 찾아서 ...

 

< 이만익 어머니 Lee Man Ik Mother and Child, 2005 Oil on Canvas, 91x73cm >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아이를 쓰다듬고 있는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 이만익 오남매와 어머니 Lee Man Ik 0 Mother and Five Siblings, Oil on Canvas, 2009 Oil on Canvas, 100 ×100cm >

 

이만익은 자식들을 좌우에 세운 채 앉아 있는 어머니 모습('오남매와 어머니', 2009)을 보여준다.

이만익 특유의 굵은 선과 평면적인 채색으로 모자상(母子像)을 단순하게 표현했다.

 

 

 

 

 

 

 

 

 

"얘야 자중자애해라"라는 말씀 잊지 않고 있습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화가 이만익

 

 

 

어머니, 어느새 시간이 이처럼 훌쩍 지나가 버렸는지 새삼 놀라워집니다.

2002년 5월달에 어머니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셔서 먼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이제 만 7년이 넘었습니다. 어머니의 음성을 들어본 지, 어머니의 손을 만져 본 지 7년이

지났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이 세상에 다른 아들,딸들과 비교하면 저희들 6남매는 참으로 어머니 복을 타고 난 자식들입니다.

그 어렵고 힘든 세상을 혼자 힘으로 이겨내시며 저희 형제를 키우셨고,

그러함에도 건강하시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96세까지 누리셨으니,

더 무엇을 더 어떤 사랑을어머니께 바랄수 있었겠습니까.

 

혼자서 그 모진 일을 다 겪어내시고 자식들을 가르치셔서

세상에 떳떳하게 살도록 자리 잡아 주셨는데 더 무엇을 하실 게 있으셨겠습니까.

 

어머니는 38세에 6남매를 혼자서 떠맡은 홀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저희가 어머나 복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남편 복이 없으셨고,

그 모든 불행을 어머니 한 분의 인고와 희생으로 감당하시고

온몸으로 자식들의 방패막이가 되셧습니다.

그것도 자그마치 50년이 넘게 버텨내셨습니다.

........................................................

 

그리고 80이 되시는 해부터 여가로 그림그리시기를 배우시고 유화를 시작하셨지요.

그 때 어머니께서는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워보니

화가인 아들의 어려움을 조금 이해할 것 같다'고 편지하셨습니다.

 

진작에 젊으셨을 때 그림을 배우셨더라면 어머니는 큰 화가가 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림 그리신 지 4~5년 쯤부터는 시카고에서 열리는 시니어 미술전에서 계속 상을 타셨고,

90세가 되시는 해에는 교민들이 유화 개인전을 열어주었지요.

 

저와 형님이 그 전시회에 참가해서 참으로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고,

내 어머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고 생각했습니다.

 

80에 새 것을 배워서90에 이루신다는 일이 얼마나 장하고 무서운 일입니까.

저는 지금도 나약해지는 자신을 반성할 때마다 어머님의 일을 되새겨보곤 합니다.

나이 70이 좀 넘어간다고 비실비실하는 저 자신을 책하는 말입니다.

.........................................................

 

어머니의 눈빛이 저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런, 별 탈 없이 잘 지내야 할 터인데,

뭐 걱정거리라도 있는 것 아니냐, 뭐 그런 말씀을 속으로 되뇌시면서 저를 보시는 듯합니다.

 

걸음걸이가 시원치 않아 의자를 밀며 화실을 몇 바퀴씩 도는 것이 요사이 저의 운동인데

그 때마다 어머니 사진 앞을 지나면서 몇 번 돌았는지 헤아리곤 합니다.

 

세월이 이렇게 훌쩍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저도 어머니처럼 열심히 의지력을 가지고 제 일을 하다 가야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

 

지금 어머니께 드리는 이 편지는 답장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화실에 있는 어머니 사진의 눈빛이 저에게 답을 해 주실 것입니다.

 

늘 하시던 말씀대로 '애야, 자중자애 (自重自愛)해라'는 말씀 지금도 있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지요.

 

어머니, 사는 날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어머니!

.

 

 

 

 

< 이만익 나의 어머니 Lee Man Ik MY Mother, 2000 Oil on Canvas, 53x46cm >

 

 

 

 

 

 

 

 

이만익 화풍으로 구현한 한국적 명화

모자도 母子圖

< 이만익 모자도 Lee Man Ik Mother and Child, 2000 Oil on Canvas, 42x31cm >

 

 

 

 

 

 

 

 

 

 

 

심청가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효심孝心 0000 이만익 한국 정서의 원류를 찾아서 ...

 

판소리 심청가를 통하여 본 한국정서의 원류00효심孝心

< 이만익 심청의 가을 Lee Man Ik Autumn of Sihm Chaung, Daughter of the Blind Man, 1993 Oil on Canvas, 162x130cm >

 

 

 

서양화가 이만익 화백의 판소리 계열의 작품 < 심청가 >를 통해서

그가 그토록 몰두하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

즉 한국 정서의 원류가 이 판소리 <심청가> 속에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의 본연의 선한 심성과 가족애, 효심, 휴머니즘 등의 인간적 정한과 보편적 감성.

이러한 소중한 무형의 정신적인 가치를 작가 자신을 한단계 더 뛰어넘는 예술적 정화 과정을 거쳐


어느 누구도 따라 그릴 수 없는 독보적인 자신의 화폭 속으로 구현속에 시켰다.

 

이만익 화백의 심청가를 판소리의 내용을 토대로 리뷰를 해보면

끊임없이 자신의 틀을 깨고 얻은 표현의 자유로움이 선의 율동성과 자연스러움,


배경과 공간의 추상스러움까지 곁들여지고 더욱 더 세련되고 현대적인 한국적 색감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이만익 화백이 판소리 심청가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고 싶었던


한국 정서의 원류는 바로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심’이다.

 

 

 

 

< 이만익 (심청가 중) Lee Man Ik Sihm Chaung, Daughter of the Blind Man , 2003 Oil on Canvas, 194x13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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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작가 인터뷰 이만익

 

옷자락을 펄럭이며 인당수 물결 속으로 몸을 힘껏 던지는'심청' 앞에 선 이만익 화백

"심청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재 중 하나"라고 말하는 이 화백은 심청이야기가 기나긴

세월 속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곤 한다"라 한다.

 

 

 

 

 

 

 

 

 

 

 

 

 

휴머니즘 예찬

 

Hommage to Humanism

.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가 이만익

0한국성을 넘어 특유의 화법으로 휴머니즘을 그려내다.

 

 

 

 

"그림을 통해 휴머니즘을 예찬합니다"

< 이만익 나그네 예수 Lee Man Ik Jesus, 2008, Oil on Canvas, 330x170cm >

 

 

“한국적인 것도 좋은데 왜 예수는 그리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 그래서 그리게 됐어. 종교적인 것을 떠나서 자유롭게 예수를 표현했어."

"자꾸 한국적인 걸 내세우니까 죽어도 나한테 비엔날레 가자는 사람이 없어요. ”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특유의 한국적 미감과 독자적 미술 세계는 여전하다.

원근법·명암법을 무시한 평면적 구성과 강렬한 원색의 사용으로

사람을 도드라지게 하는 ‘이만익 그림’의 고유성은 유지되고 있다.

예수와 햄릿은 민화의 기법 안에 녹아들면서 토착적 한국인을 떠올리게 한다.

 

 

 

 

 

 

 

Artist voices humanism through paintings

 

< 나그네 예수' 앞의 이만익 화백 >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이만익은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술신동’으로 불렸고

경기중 3년 때는 국전에서 입선도 했다.

이후 서울대미대 재학시절 국전 특선을 했고,

이후에도 3연속 특선을 차지했다.

하지만 학연 지연에 함몰된 국내 미술계에 염증을 느껴 파리 유학길에 올랐고,

그곳에서 ’서양의 모방이 아니라 온전한 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다짐한 후

한국적 미감을 살린 독자적 그림세계를 구축했다.

그에겐 ’한민족의 자화상을 가장 잘 그리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요즘에는 그림에 휴머니즘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이만익 화백은 뚜렷하고 간결한 윤곽선과 단순화된 형태,

토속적 색채 속에 우리 역사 속 인물과 설화의 이야기를 그려온 대가다.

이 화백은 "요즘 그림에는 휴머니즘이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

"휴머니즘이라는게 뭔가요.

휴머니즘이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외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보기엔 요즘의 그림에는 휴머니즘이 사라지고 인간은

조롱과 비하의 대상이 돼 버렸어요.

 

현대미술은 너무 인간을 위하지 않는 것 같아요

. 이런 식으로 가면 너무 살벌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진한 윤곽선과 강한 토속적 색채의 대비로 대표되는 이만익 특유의 화법은 파리 유학 시절에 정착된 것이다.

 

 


"35살 때 프랑스로 건너갔는데 그때 처음 대가들의 원화를 보게 됐어요.

작품을 보니 다 자기 세계가 있고 개성이 있더군요.

 

그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이전에 그렸던 아카데믹한 그림들에는

내가 없고 '남의 냄새'가 나더라구요

. 고민하다 생각한 게 '우리'였어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그래서 한국적인 정한을 내 모티브로 잡아보자고 했고

그러다 내용과 양식이 맞아떨어진 게 1978년이에요."

 

 

"사인(서명)이 없어도 내 그림이라고 알아볼 수 있게 된 게 1978년 무렵이에요

. 그걸 이어가면서 주제의 폭은 넓혀보자 한거에요.

그림 그리는 사람은 틀에 묶이기 마련이지만 저는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이 나이에 새 사람이 될 수는 없잖아요.

큰 욕심은 이제 없어요. 그냥 지금의 틀 속에서 조금만 더 나답고 멋진 그림을 그리는게 앞으로의 소망이에요"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그림

 

 

< 이만익 고향으로가는 가족(화가 이중섭) Lee Man Ik Artist Lee jung seop, 1994, Oil on Canvas, 372 x130cm >

 

화가 이중섭이 가족과 오손도손 고향에 가는 광경을 그린 그림('고향으로 가는 가족(화가 이중섭)')은 상징적이다.

이만익 화백의 '고향으로가는 가족' 화폭 속에서는 비운의 화가 이중섭도 행복해 보인다.

가족과 떨어진 채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병으로 숨진 그의 영혼을 위로하려는 화가 이만익의 인간애를 엿볼수있다.

 

 

 

 

 

 

 

 

0< 이만익 비공 화사非空畵師 Lee Man Ik Artist Bigong (Jang Ougczihn), 1991, Oil on Canvas, 162x112cm >

 

故 장욱진화백과 요절한 그의 아들을 그린 작품

 

장욱진 선생이 타계한 후 이만익 특유의 스타일로 그린 대작 또한 걸작이다.

선생의 그림을 닮은 저 세상에서 먼저 간 선생의 아들이 따라주는 술을 드신다.

切除절제와 理想이상의 "생략"이 이만익 특유의 독창성으로 다시 태어난 듯, 볼수록 정이 가는 우리네 이야기로 승화되었다.

 

 

 

 

 

 

 

 

“삭막한 세상 온기 한점 됐으면…”

 

00< 이만익 도원가족도 Lee Man Ik Family 2008, Oil on Canvas, 162x130cm >

 

굵은 선과 단순한 형태, 강렬한 원색으로 한겨레의 심성을 담아온

이만익 화백의 2008년작 ‘도원가족도’는 한국인의 원형질을 담았다는 평을 듣는다.

진한 윤곽선과 강한 토속적 색채의 대비로 대표되는 이만익 특유의 화법은 파리 유학 시절에 정착된 것이다.

단순하고 절제된 선과 납작한 형태에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한 인물들은 우리 겨레의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보편성도 지니고 있다.

 

 

 

 

 

 

 

 

 

< 이만익 가족도 고향집 Lee Man Ik Family, 2009, Oil on Canvas, 162x112cm >

 

 

한눈에 누구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본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큰 기쁨은 없으리라.

작가라면 누구나 이렇게 되고 싶어하지만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초를 단단히 다진 뒤 뼈를 깍는 고통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여 한다.

고흐가 그랬고 피카소가 그랬다. 이만익도 마찬가지였다.

 

 

" 요즘 그림에서 인간은 조롱과 비하의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현대 미술은 사람을 놀라게만 할뿐. 사람을 위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휴머니즘은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외투라고 생각해요"

 

그는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가 이만익 그가 추구하는 휴머니즘의 원천엔 가족이 있다.

 

 

 

 

 

 

 

 

예수도 햄릿도 ‘정겨운 한국인’으로 부활

 

0< 이만익 수로부인영접도 Lee Man Ik 1995~2008, Oil on Canvas, 388 x130cm >

 

 

 

이 화백은 "내 작품의 초점은 인생의 어려움을 감싸주는 '외투'와도 같은 휴머니즘의 실천에 맞춰져 있다"며

"속이 빈 통에서 나는 웃음 소리와 같은 울림의 세계"라고 강조했다.

 

 

 

 

 

 

< 이만익 팔상도(도솔래의도) Lee Man Ik 2004, Oil on Canvas, 330 x170cm >

 

 

 

 

 

이만익 휴머니즘 예찬’ 전에서 서양의 문학을 소재로 한 신작을 선보인다.

알퐁스 도데의 <별>, 셰익스피어의 <햄릿> 등이 소재로 등장한다.

 

 

 

 

 

 

< 이만익 햄릿 Lee Man Ik Hamlet (Shakespeare) 2008, Oil on Canvas, 91 x91cm >

셰익스피어의 햄릿

 

 

" 햄릿을 그릴 때는 나를 그리듯 그렸어요.

내가 젊을 때는 잘생겼거든, 하하하."

 

[이만익 화백 인터뷰중 ]

 

 

 

 

 

< 이만익 비올레타 Lee Man Ik Violeta (La Traviata, Giuseppe Verdi ) 2008, Oil on Canvas, 60 x60cm >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

 

 

 

"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가 알프레도를 만나

'아 그대였던가'를 부르는 소프라노의 표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

[이만익 화백 인터뷰중 ]

 

 

 

 

그의 ‘서양’은 새로워지고 자유로워지려는 시도다.

“무턱대고 자유로워지면 이만익이라는 틀이 깨져.

그 틀에 묶여 있지만 자유롭고 싶다”.

 

" 파리 유학 이후 정립된 특유의 화법에 대한 이야기를 풀며

그걸 이어가면서 주제에 관한 폭은 넓히려 한 겁니다." 고 했다

 

 

 

작가는 그동안 한민족의 토속적인 설화나 역사,가족 등 비교적 가벼우면서 아가자기한 스토리를 화면에 활용했지만

최근에는 베르디의 '춘희'를 비롯해 세익스피어의 '햄릿',알퐁스 도데의 '별',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등

세계적인 문호와 음악가의 작품으로 소재를 확장시켰다.

 

한국의 가족이나 역사에 안주하던 안일함에서 벗어나 현대적 조형의 세계로 눈을 돌린 겁니다.

세상이 변하니 미감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화가가 제일 그리기 어려운 것이 누굴 보고 싶어하거나 그리워하는 감정입니다.

" 붓을 안 들었으면 시를 썼을 것이라는 그의 그림이 문학적인 까닭이다.

 

 

 

"그림에서 휴머니즘이 사라졌어요. 인간을 너무 파헤친 나머지 조롱과 비하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현대미술은 인간을 위하지 않고 그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할 뿐인 것 같아요."

 

 

 

 

 

 

< 이만익 명성황후 Lee Man Ik The last empress 1997, Oil on Canvas, 91 x73cm >

 

 

이만익 화백의 뮤지칼 명성황후의 포스터에 사용되어 많이 알려졌고,


이화백의 투철한 역사의식이 잘 나타나있는 작품이다.

특히 1997년 미국 링컨센터에서 공연할 때는 이 포스터가 뉴욕의 지하철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명성황후’는 조선의 절망적 상황에 맞서 나라를 구하려는 상념에 젖은

명성황후의 당당하고 기품있는 모습으로 우리 민족의 기개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 이만익 대한국인 안중근 Lee Man Ik 2008, Oil on Canvas, 91 x91cm >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한 '대한국인 안중근'

 

 

 

 

 

 

 

 

 

< 이만익 초인 (이육사 시 '광야') Lee Man Ik 2008, Oil on Canvas, 112 x112cm >

백발노인이 등장하는 '초인'은 이육사의 시 '광야'에 등장하는 초인을 형상화

 

 

이육사의 ‘광야’의 초인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설명하면서

구성지고 구슬픈 소리로 ‘광야’를 읊었다.

“작업할 때면 시를 암송한다”는 그는 “하얀 영감님이 초인이야.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의 기사’같이 해석해봤어요. 화가의 독단이고 특권이지”라며 웃었다.

 

 

 

"사람을 강조하다 보니 원근법, 명암법은 무시되고

상대적으로 색이 강렬해지고 평면적이 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만익의 작품에선 '인간'이 더없이 중요한 요소다.

허나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실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역사 속 인물이거나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허구적 인물을 작가는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오늘 우리 앞에 불러내고 있다.

 

 

 

"그림은 소리없이 읊어지는 시와 같은 것이 돼야 한다"

"앞으로도 인간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데 남은 여생을 바치겠다"

 

 

 

 

우리 설화와 역사, 시 등을 토속적 색채로 그려온 그는

"한국의 설화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휴머니즘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 이만익 날개 옷 (선녀와 나뭇꾼) Lee Man Ik 2008, Oil on Canvas, 112 x112cm >

 

 

 

 

 

 

 

 

 

 

 

 

 

 


석양의 노래

 

 

 

 

석양(夕陽)의 노래 CREPUSCULE - 이만익展

< 이만익 노을 Lee Man Ik Crepiscule 2011, Oil on Canvas, 190x130cm >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화가 이만익의 초대전 ‘석양(夕陽)의 노래’



이만익 화백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현재까지 60년에 걸처 미술계에 몸담아 오며

민화와 민담을 주제로 따뜻하고 정겨운 작품들을 선보여 왔으나

이번 ‘석양(夕陽)의 노래’를 통해 따뜻함과 정겨움 속에 숨어있는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선보인다.

 

 

 

 

 

 

 

다시 내 그림에 대하여 ‘석양(夕陽)의 노래’

 


이만익

 

 

 


한 십 오년 전에 개인전을 열면서

‘내 그림에 대한 소견’이라는 글을 써서 전시회 서문으로 쓴 적이 있다.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내 생각이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 이번 전시는 아마도 나이 탓이겠지만 자기 감상에 빠져

전시회의 큰 주제를 ‘석양(夕陽)의 노래’ 라고 정했다.

 

음악가도, 시인도 아닌 화가가 그림의 범위를 노래라고 표현한 것은 살아온 인생을 되새기면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의미가 있다. 이런 나만이 아는 내 마음 속의 감흥을 적어내고 싶어서

서툰 내 글로 서문을 쓰게 되었다

 

. 자신이 스스로를 평하는 데는 보이지 않는 자기 미화나 합리화가 숨어 있을 테지만,

나는 가능한 내 그림에 연계된 의도를 거짓 없이 적고 싶고 그로써 여러분들의 인식에 도움을 드리고 싶다.

즉 내 생각이 옳던 그르던 간에 정직한 심정을 토로하려한다.......

 

 

 

 

 

 

이번 전시회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석양의 노래’라는 제목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나도 ‘석양의 노래’라는 제목이 특별한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흐르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시작이 있으면 중간이 있고, 중간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런 것들이 인생의 과정이다.

 

‘석양’이라는 시간은 하루 중에서 ‘새벽과 저녁 해가 지는 때’를 말한다.

내 나이는 이제 인생의 3/4의 해당하는 때다.

 

그래서 이제는 앞을 볼 시간보다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

즉, 추억할 시간이 많아 이 시간에 그린 그림들을 ‘석양의 노래’라고 정했다.

 

 

음악가도, 시인도 아닌 화가가 그림의 범위를 노래라고 표현한 것은 살아온 인생을 되새기면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의미가 있다.

 

이런 나만이 아는 내 마음 속의 감흥을 적어내고 싶어서 서툰 내글로 서문을 쓰게 되었다.

 

자신이 스스로를 평하는 데는 보이지 않는 자기 미화나 합리화가 숨어 있을 테지만,

나는 가능한 내 그림에 연계된 의도를 거짓 없이 적고 싶고 그로써 여러분들의 인식에

도움을 드리고 싶다. 즉 내 생각이 옳던 그르던 간에 정직한 심경을 토로하려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주책없이 젊은 날의 생경한 상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또한 그러한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나이를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럽지만 내 나이 이제 70중반을 향하고 있고, 미술 대학을 졸업하고 화업에 들어선 지 50여년,

중고등학교 어린 나이에 그림에 매달려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어언 60년이나 되었다.

 

사람의 일생을 일년 12개월로 압축한다면 이제 나는 10월 달쯤에 들어섰고, 하루로 압축한다면

서쪽 하늘로 석양이 아름다운 해질녘에 도달했다.

당나라 때 시인 이의산은 석양은 무한 아름답지만

이는 곧 황혼이 가깝게 와 있다는 것이라 했다.

석양 무한호, 지시근황혼이라고 영탄했다.

 

이처럼 이제 나도 좋건 싫건 석양을 노래하고 황혼을 맞아야 하는 자리에 이르러 있다.

나는 지난 몇십년간 나다운 그림을 그리려고 무한 애를 썼고,

이 땅에 태어난 화가로서 한국적 정서를 노래하려 했다.

 

그 속에 우리 소박한 민생의 정겨움을 나누고 사는 가족, 부모, 자식, 형제, 친구, 연인의 정과 사랑을

담으려 했고, 어려움과 극복의 세월 속에서 우리 역사를 이끌어온 선조들의 용기와 삶의 풍류,

자연과의 너그러운 화합을 표현하고 그것이 민족의 노래, 우리들의 노래가 되기를 갈망해왔다.

 

인간은 알 수 없는 앞길을 개척하고 예술은 미담의 세계를 꿈꾼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 미술은 불과 몇 년간 세상을 흔들다 사라지는

포용력도 깊이도 없는 일회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이에 비하여 자기고집으로 한 가지 일념을 가지고 몇십년을 일한다는 것은

지극히 미련하고 바보스러운짓인 것처럼 보인다.

 

화업 50년은 한 사람에게 너무 고독하고 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해서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있는 인생이 어찌 즐겁게 흥얼거릴 가벼운 노래만 있겠는가.

사람이 나누는 정에도 기쁜 정, 슬픈 정, 만나는 기쁨, 헤어지는 아픔이 있는 것인데...

 

지난 세월 나는 너무 오랬동안 따뜻하고 정겨운 정감만을 표현하려했던 것 같다.

내 속에 있는 슬픔과 분노의 감정은 자제해왔다.

 

이제 나는 석양이 아름답고 뉘엿뉘엿 황혼에 가까워지는 길목에 서서

나의 서투르고 덜 익은 세계관,종교관, 인생의 추억, 희망을 되새기며

나의 마지막 노래가 될지도 모르는 '석양의 노래'를 홀로 읊으려 한다.

 

성실히 일하는 인생이었다면 자신이 만나고 자기가 산 세상을 원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젊고 젊은 나이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오늘밤도 별빛이 바람에 스치운다." 라고 읊은 윤동주 시인의 젊고 슬픈 노래를 지금 와 되새기게 된다.

 

어찌되었건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은 아름답고, 정겹고,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자유로운 마음으로 내 그림의 세계에 매어달려 힘찬 석양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자료제공 엠케이컬렉션] '석양을 노래하다' , 화가 이만익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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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이만익 선택된 예수 Lee Man Ik Jesus 2011, Oil on Canvas, 190x130cm >000< 이만익 붉은관음 Lee Man Ik the Red Buddhist Goddess of Mercy2011, Oil on Canvas, 190x130cm>

 

 

 

 

 

- 이번 전시회에서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나?-

 

 

사람의 인생은 희로애락이 있다.

인간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가족도’를 그리고 ‘모자도’를 그리고 ‘우리역사’를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관심이고 인간의 희로애락에 대하여 그리려고 한 것이다.

. 이 그림들은 즐거움, 다정함보다는 슬픈 감정을 담아 보려고 했다.

 

즉, 생과 사에 관한 생각, 종교에 관한 생각들도 그림으로 취급하려고 한 것이 이번 전시회의 의도이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그림 속에 담겨 있는 인간 삶의 폭을 더 많이 깨닫기를’ 바란다

. 그런 뜻에서 이번 전시회의 그림들의 의미가 있다.

 

 

 

 

 

< 이만익 아우래비 접동 (김소월의 시) Lee Man Ik 2011, Oil on Canvas, 194x130cm >

 

 

 

 

 

- 전시회 소개 문장에 “화업 50년은 한 사람에게 너무 고독하고 긴 것일지도 모른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이만익 화가에게 ‘그림’은 어떤 존재인가?-

 

 

‘그림’은 나에게 있어서는 ‘현재 사는 방법이며 수단’이다.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는 그림이 ‘생의 목적’이었다.

나에게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 그림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해서 택한 그림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지금까지 바쳐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생명이 계속되는 한은 그림을 그릴 것이고

그렇게 나를 지키려고 할 것이다. 그림은 바로 나 자체이다.

 

 

 

 

 

 

< 이만익 얼씨구, 차차차 Lee Man Ik Hurray Cha Cha Cha 2011, Oil on Canvas, 162x113cm >

 

 

 

 

-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가장 어렵고 힘들 때는 열심히 그린 그림인데 누군가를 닮았다고 할 때이다.

그것을 벗어나려는 것이 나의 투쟁이었다.

그렇게 해야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림은 창조이지 모방이 아니다.

그러한 생각을 입히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 이만익 화가의 화풍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많은 이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화가이기도 하다.

이만익만의 그림 세계가 있다면?-

 

내 그림은 학구적인 훈련을 거친 이후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애쓴 것이었다.

현재 내 그림의 특징은 방법적으론 평면적이고 단순화시켰다는 점이다.

색에서는 강하고 서로 보완관계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만익 회상 Lee Man Ik Retrospection 2008, Oil on Canvas, 90x90cm >

 

 

 

 

- 원로 화가로서 후배 화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림을 진심으로 그려라,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려고 애써라,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모든 그림은 과정이 있어야 고운 그림의 결과가 나온다.

흉내 내지 말고 독자적인 세계를 고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 이만익0 노을속 기다림 Lee Man Ik Waiting in the Sunset0 2008, Oil on Canvas, 73 x61cm >

 

 

 

 

 

- 향후 어떤 계획이 있나?-

 

건강이 허락하는 한 2,3년 안에 개인전을 하고 싶다.

그것이 몇 번이 지켜질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 이만익 기러기 Lee Man Ik Wild Goose 2008, Oil on Canvas, 73x61cm >

 

 

 

 

 

 

 

 

< 이만익 기도하는 예수 Lee Man Ik Jesus 2011, Silk Screen, 41x32cm >

 

 

 

 

 

 

 

 

 

 

 

 

 

 

Biography0 이만익 0Lee, Man-Ik0 (1938-2012)

 

1938 Born in Haihjou, Hwang-Haih Province, Korea

1961 Graduated from College of Fine Arts, Seoul National University

1973-74 Studied at Academie Goetz, Paris

1988 Art Director of the 24th Olympiad Seoul 1988

 


1938 황해도 해주 출생


1961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973-1974 프랑스 아카데미 괴쯔 (Goetz) 연수


1988 제24회 서울 올림픽 미술감독 제8회 서울 장애인 올림픽 미술감독

1993 제5회 이중섭 미술상 수상

 

 

 

 

 


 

Solo Exhibitions 개인전

 

 

 


2011 제38회 이만익 전 (석양의 노래), 윤당갤러리, 서울

The 38th solo exhibition : Crepuscule ( Yoon Dang Gallery , Seoul , Korea)

 

2009 이만익의 휴머니즘 예찬, 갤러리현대 강남, 서울

 


2006 갤러리 미술관가는길, 서울

 



2005 세오 2주년 개관기념 초대전, 세오갤러리, 서울


한국구상대전, 예술의전당, 서울

 


2004 한국국제아트페어, COEX 가모화랑, 서울


미술세계화랑, 동경, 일본

 

2003 송미령갤러리, 서울

The 31th solo exhibition ( Song Meeryung Gallery, Seoul, Korea)

 

앙가쥬망 창립 40주년 28인 군집개인전, 예술의전당, 서울

 



2002 화랑미술제, 서림화랑, 서울


현대백화점화랑, 울산

 

2001 공간화랑, 부산

The 27th solo exhibition (The Kongkan Gallery, Busan, Korea)

 


2000 한국정서의 원류를 찾아서, 가나아트센터, 서울

 

1999 Bill Hodges화랑, 뉴욕, 미국

 



1995 이만익 그림 40년 회고전, 예술의전당, 서울

The 24th solo exhibition, Retrospective Exhibition : Forty Years of My Painting

(Han-garam Gallery, Seoul Art Center, Seoul, Korea)

 

1994 제5회 이중섭 미술상 수상기념전,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The 23th solo exhibition : The 5th Commemorative Exhibition of the Winner of the

Lee, Joung-Saub Art Prize ( ChosunIlbo Art Museum, Seoul, Korea)

 

1992 줄리아나 갤러리, 서울

The 22th solo exhibition (Juliana Art Gallery, Seoul, Korea)

 

갤러리현대, 서울


The 21th solo exhibition (Hyundai Gallery, Seoul, Korea)

 

1991 금화랑, 부산


The 20th solo exhibition (Kum Art Gallery, Seoul, Korea)

 

갤러리현대, 서울


The 19th solo exhibition (Hyundai Gallery, Seoul, Korea)

 

 

 

 

 

 

Group Exhibitions 단체전

 

1962~2011 앙가쥬망 동인전


Annual Exhibitions of Engagement Fine Art Group (1962~2011)

 

1977 아시아 현대미술제 (동경 도립미술관, 일본)


The Modern Fine Art Exhibition of Asia (Tokyo, Japan)

 


1987 87 한국 현대작가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87 Contemporary Artists Exhibitions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wachon, Korea )

 

1994 94 한국현대회화 '한국미술, 빛과 색'전 (호암미술관)


94 Korean Art-Light and Color (Ho-am Gallery, Seoul, Korea)

 

1995 한국 100인의 자화상전 (서울미술관)


Self-portrait Exhibition of 100 Koreans ( Seoul Art Museum, Seoul, Korea)

 

한국현대미술 파리전 (Couvent des Cordeliers, 프랑스)

Korean Contemporary Art Exhibition in Paris


1996 한국의 누드미술 80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80years of Korean Nude Art (Seoul Arts Center, Seoul, Korea)


1999 '이중섭 미술상 10년의 발자취'전 (조선일보 미술관)


The 10 year of Review for Prize of the artist Lee, Joung-Saub( Chosun Ilbo Art Gallery, Seoul, Korea)


2000 서울판화미술제 (시립미술관)


2001 아시아 평화미술전 (이와꾸니, 일본)

 


2002 한.일 현대미술전 (다카시마야 갤러리,, 일본)

 

서울 시립미술관 개관전 - 한민족의 빛과 색 (서울 시립미술관)


2003 불교와 카톨릭 미술인의 만남 (카톨릭 갤러리)

 

2004 '2004 KIAF' 한국국제아트페어 - 가모갤러리 (COEX, 인도양홀)외 다수

 

 

 

 

Prize 수상

 

 


1974 르 쌀롱전 은상 (그랑빨레, 파리, 프랑스)

Le Salon ( Society des Artistes Francais ) : Won a Silver Medal ( Grand-Palais, Paris )

 

1993 제5회 이중섭 미술상

Awarded the 5th Lee Joung-Saub Art Pr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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