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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ollection 엠케이컬렉션 이만익미술연구소ㅋ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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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MAN IK

 

ARTIST'S0 REVIEW

 

 

 

 

 

이만익 봄의 가족도 家族圖

 

< 이만익 봄의 가족도 家族圖 Lee Man Ik Family 2011, Oil on Canvas, 117x80cm >

 

 

"갈수록 삭막해져가고 변해가는 인명경시 물질주의를 겪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만익의 가족도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보는 이로 하여금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 받을 수 있게 하고

치유의 길로까지 인도 하는 한국적 휴머니즘의 압축되어 있다."

 

영원한 한국적 정서의 원류가 되는 ‘가족’을 소재로 화가 이만익은 그토록 험난하고

어려운 시대를 경험하면서 자신을 굳건하게 지탱해주었던 것이 바로 ‘가족’이고

가족도를 통해서 한민족의 자화상과 우리의 얼굴을 형상화하여

보는 이들에게 보편적 공감과 사랑,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소박하지만 정감 넘치는 이만익의 ‘가족도’는

단순화 시킨 인물과 함께 강한 원색과 안정감 있는 구성

계절의 변화 및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과 토속적 정취가 어우러져

한국적 정감이 물씬 풍기는 ‘이만익의 가족도’로 탄생된다.

 

그의 그림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이만익만의 화풍이며

'한국적 정서'라는 커다란 과제 아래

인위와 조작이 없는 청정을 그린

한국적 그림으로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을 적셔줄 것이다.

 

 

- MKCollection 엠케이컬렉션 이만익 미술연구소 -

한국적 명화의 탄생 이만익 가족도 家族圖 봄의가족도 Lee Man Ik Family

 

 

 

 

 

이만익 가족도

 

< 이만익 봄나들이- 가족도 Lee Man Ik Family 2002, Oil on Canvas, 117x91cm >

 

 

 

한결같이 그려온 가족애와 그리움


이만익 화백은 절제된 색채와 구도로

한민족의 따뜻한 심성과 가족애를 일관되게 표현해오고 있다.

 

전설이나 설화,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근하게 풀어낸 작품들은 소박하고 향토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화창한 봄날 밥상을 머리에 이고 아이를 등에 업은 어머니,

봄꽃을 가득 채운 바구니를 메고 어깨 위에 어린 딸을 태우고 있는 아버지,

술병을 머리에 올린 어린 아들이 등장하는 ‘가족나들이’

단란한 네 식구가 봄의 정취에 젖어 나들이가는 정겨운 모습을 담았다.

 

 

 

 

 

 

이만익 도원가족도 - 고행에서 피어난 정情

 

< 이만익 도원가족도 Lee Man Ik Family 2008, Oil on Canvas, 162x130cm >

 

 

굵은 선과 단순한 형태, 강렬한 원색으로 한겨레의 심성을 담아온

이만익 화백의 2008년작 ‘도원가족도’는 한국인의 원형질을 담았다는 평을 듣는다.

진한 윤곽선과 강한 토속적 색채의 대비로 대표되는 이만익 특유의 화법은 파리 유학 시절에 정착된 것이다.

 

단순하고 절제된 선과 납작한 형태에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한 인물들은

우리 겨레의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보편성도 지니고 있다.

이만익 화백이 그려낸 인물들은 어른이나 어린아이, 남녀 구분 없이 대부분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표정을 담아내기 위해 이런 모습을 그린다고 말했다.

 

“화가가 제일 그리기 어려운 것이 보고 싶거나 그리워하는 감정입니다.”

붓을 안 들었으면 시를 썼을 것이라는 그의 그림이 문학적인 이유다.

 

 

처절한 외로움에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런 마음을 작품에 옮깁니다.”

우리 민족의 심성과 사랑을 따뜻한 가족애로 표현하는 이만익 화백, 그림 속에서

묻어나는 따스함과 달리 처절한 ‘고행’을 통해 작품 세계가 열림을 말한다.

 

그가 즐겨 그리는 것은 가족도, 달빛아래 핀 벚꽃속의 일가족, 동글동글한 정겨운 얼굴,

자연의 서정성 짙은 풍경을 상징적인 배경삼아 단란하고 정겨운 가족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출처] 한국적 명화의 탄생 - 이만익 가족도 家族圖 - 도원가족도 |작성자 주몽

 

 

 

 

 

그림으로 만나는 삼국유사

 

한국적인 그 무엇을 찾던 이만익 화백에게 <삼국유사>는 거대한 고전으로 다가왔다...

문학에서 설화는 아득한 옛날부터 구전되어 온 이야기라는 특징을 가지는데

신화, 전설, 민담의 삼분법으로 한국 설화를 분류하고 있다.

 

이런 각각의 다양한 내용과 설화들을 현대 회화에서 소재로 등장시켰을때

단순히 한국적인 소재들을 화면에 보여주는 것보다는 우리 민족의 문화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는 삶의 가치관과 정서들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설화를 주로 소재로 잡고 있는 이만익의 회화는 민족적이며

가장 한국적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이만익 낙화삼천도 Lee Man Ik, 1984, Oil on Canvas, 96x96cm >

 

 

 

 

신화와 역사를 그린 화가 이만익

 

 

고대 신화와 설화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끌어들여

당대인들의 상상력에 의해 완성된 이야기다.

 

그러나 많은 동서양의 신화와 설화가 시공을 초월하여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

그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신화와 전설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심성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재창조되면서

현대에까지 계승되고 있어,

 

신화와 설화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혹은 민족심성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

신화학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유럽 중세의 화가들이

그리스와 로마신화의 등장인물이나 이야기를 화폭에 담으면서,

유럽인들의 근원과 보편적 심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시대부터 무덤 안에

봉황, 용, 주작 같은 신화에 나오는 동물을 그렸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사찰의 벽과 탱화에 많은 불교 설화와 민간 전승 설화를 그렸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단군 신화와 고구려 건국 신화 등은 황당한 옛날 이야기로 폄하되었고,

신화와 설화에 관심을 두는 화가는 없었다.

그런데 이만익 화백이 1980년부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멋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단군 신화의 웅녀, 고구려 신화의 주몽, 해모수, 유화를 비롯해 백제와 신라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우리 민족의 근원적 모습과 보편적 심성을 찾으려 한 것이다.

 

 

 

[출처] 그림으로 만나는 삼국유사 1 - 이만익 -


[LUXURY] 三國遺事

당대엔 B급, 후대엔 최고가 된 고전


 

 

 

 

 

그림으로 만나는 <삼국유사>

 

 

그렇게 찾아 헤맸던 한국 문화의 원형을 서양화가 이만익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프로 다양한 그림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0 <삼국유사> 속 다양한 이야기는 이만익 화백이 가장 즐겨 그린 소재이자 주제였다.

 

 

< 이만익 선화공주 Lee Man Ik Princess Seuhnhwa, 1984, Oil on Canvas, 97x97cm >

 

 

 

작가의 말

 

 


진평왕때 선화공주는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한다.

그러나 괘심하게도 경주 장안에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퍼져 나갔으니

‘선화공주님은 살그머니 정을 통하여, 서동이란 사내를 밤마다 몰래 안고 다닌다누....’

사실이야 어떠했던 공주가 남몰래 사랑을 즐긴다는 이 서동요는 참 그럴 듯하다.

 

한 천 년 거슬러간 이야긴데도 서동이란 사내에게 질투를 느낄 만하다.

마를 캐던 산골 청년이 나중에 무왕인지, 무령왕인지가 되어서라기보다.

저 그윽한 선화공주님을 이끌어낸 그 놀라운 사랑의 솜씨에 대해서이다.

 

 

[출처] 그림으로 만나는 삼국유사 1 - 이만익 - |


[LUXURY] 三國遺事

당대엔 B급, 후대엔 최고가 된 고전

 

 

 

 

 

< 이만익 처용가무도 Lee Man Ik , 1984, Oil on Canvas, 97x97cm >

[출처] 그림으로 만나는 삼국유사 1 - 이만익 - |

[LUXURY] 三國遺事

당대엔 B급, 후대엔 최고가 된 고전

 

 

한국적인 그 무엇을 찾던 이만익 화백에게 <삼국유사>는 거대한 고전으로 다가왔다...

 

문학에서 설화는 아득한 옛날부터 구전되어 온 이야기라는 특징을 가지는데

신화, 전설, 민담의 삼분법으로 한국 설화를 분류하고 있다.

 

이런 각각의 다양한 내용과 설화들을 현대 회화에서 소재로 등장시켰을때

단순히 한국적인 소재들을 화면에 보여주는 것보다는

우리 민족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바탕이 되는 삶의 가치관과 정서들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설화를 주로 소재로 잡고 있는

이만익의 회화는 민족적이며

가장 한국적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출처] 이만익 신화와 역사를 그리다 |작성자 주몽

 

 

 

 

 

< 이만익 치술령 신모도 Lee Man Ik Godness on the Chisoullyaung Pass, 1984, Oil on Canvas, 91x73cm >

 

 

 

 

 

작가의 말

 

 

눌지왕 때 신라는 국력이 약해

왕제 미해를 일본에 볼모로 보낸 지 30년이 되었었다.

양산 태수 김 제상은 왕을 위해 고구려에 있던 보해를 멀리 구해오고,

미해를 구하기 위해 율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미해를 탈출시키고 왜왕에게 잡힌 바 된 제상은

‘왜국의 신하사 되느니 계림의 개, 돼지가 되겠다.’하고,

오형을 달게 받고 순절하고 말았다

 

남편이 살아오기를 기다리던 제상의 처는

바다가 보이는 치술령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다 죽으니 그 원혼이 치술령신모가 되었다.

사당이 있다 하나, 신모는 이런 모습으로

밤마다 치술령 깊은 곳을 헤맬 것 같다.

 

치술령의 신모(神母)가 된 신라 눌지왕의 충신 박제상의 처.

눌지왕의 신하인 제상이 눌지왕의 아우인 미해를 구출하고 왜국에서 죽고 난 후,

 

제상에 대한 그리움을 이겨내지 못하여

바다가 바라보이는 치술령(?述嶺)이라는 고개에 올라가

왜국쪽을 바라보고 통곡하다가 죽어 치술신모(?述神母)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것으로서,

그의 부인이 고개에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설화가 민간에 전하기도 한다.

 

 

[출처] 이만익 신화와 역사를 그리다 |작성자 주몽

 

 

 

 

 

 

그림으로 만나는 <삼국유사>

 

 

그렇게 찾아 헤맸던 한국 문화의 원형을 서양화가 이만익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프로 다양한 그림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0 <삼국유사> 속 다양한 이야기는 이만익 화백이 가장 즐겨 그린 소재이자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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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익 정읍사 Lee Man Ik Jeuhng-ub-sa (Prayer for Lover’s Safety, 1982, Oil on Canvas, 100x80cm >

 

 

 

정읍사(井邑詞)는 지금까지 남아 전하는 유일한 백제의 노래이다.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노래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신라 경덕왕(景德王) 이후 구백제(舊百濟)에 유행하던

민간노래인 듯하며,

고려·조선 때 궁중음악으로 쓰였다.

 

 


이 노래는 남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음에도

이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몸이나 편안히 다니시라고


달에게 축원하는 아름다운 여심의 간절한 표현이다.

 

이 노래에서 달은 곧 천지신명(天地神明)을 뜻하며


이를 향해 여인이 축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읍사>가 음악으로 이렇게 작곡된 것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일 것이다.

 

 

 

 

 

 

< 이만익 헌화가, Lee Man Ik The Song of the Flower Offering, 1999 , Oil on Canvas, 91x73cm >

 

 

 

신라 향가의 하나. 제 33대 성덕왕때 한 노옹에 의하여 불린 4구체의 향가이다.

성덕왕대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로 부임해가다가

해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곁에는 높이 천길이나 되는 돌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바다에 닿아 있는데,

그 위에는 철쭉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그 꽃을 보고 좌우의 종자들에게

그 꽃을 꺾어 바칠 자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으므로

불가능하다고 대답하였다.

 

마침 그 곁으로 암소를 끌고 가던

노옹이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고 또 가사(歌詞)를 지어 바쳤는데,

그 노옹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출처] 이만익 신화와 역사를 그리다 |작성자 주몽

 

 

 

 

 

 

도 강 (渡江)

 

< 이만익 도강(渡江) Lee Man Ik Crossing of the river 2007, oil on canvas, 160x300cm >

 

 

 

도강은 한 척의 나룻배가 강을 건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40~50년 전만 해도 강과 물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서울의 중심을 흐르는 한강 줄기에도

팔당, 덕소, 광나루, 뚝섬, 서강, 마포 등에 나룻배가 떠있어

행인을 나르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 주었다.

 

지형상 우리나라 대부분의 강은 동에서 시작, 서해로 흘러가는데

 

대동강, 예성강, 한강, 금강, 영산강 등이다.

 

그러하다.

 

해질녁의 서쪽 하늘은 아름다운 꽃빛으로 노을이 지는데

서쪽으로 흐르는 강가에서 보는 노을은 특히 더 아름답다.

 

 

이 그림은 바로 그러한 때에

일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황소 등에 무르익은 복숭아를 담고

아들딸과 누렁이를 태우고

몇 십 년을 한자리에서 일하며

강을 건너 준 늙은 뱃사공과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을에 덮인 강변을 보며 귀가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아마 복숭아가 익는 도원에 들러 하루를 보내고

이제 행복이 깃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 것이다.

 

배를 따라 같이 가는 물새들과

언제나 친숙하고 믿음직한 뱃사공이 같이 있어


인정이 넘치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마포나루에서 당인리 너머로 피어나던

저녁노을, 금강을 끼고 황산벌로 피어나던

진달래 빛 노을을 되새기며 나는 이 그림을 그렸다.

 


아~ 아름다웠던 지난날을 ......

 

 

2007년 5월 이만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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